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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활동하는 쏭미친의 대만 연예계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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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야친으로 살아남기 2부

2008.09.10 16:32 | Posted by 쏭미친 yaqin
1) 대만에서 CF 모델로 데뷔하다

2008년 꽃 피는 봄이 다가왔을 때였어요. 그때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오디션 통보를 받았는데, 이게 웬걸 대사의 량이 엄청 났어요. 알고 보니 화장품의 성분을 20개 가까이 나열해 놓은 것이었는데, 그걸 랩으로 엄청 빠르게 하라는 요청이더군요.

한국어로 랩을 해도 할 수 있을까 말까한데, 중국어로, 그것도 화장품 성분을 랩으로, 더군다나 엄청 빠르게 하라니 그저 앞이 깜깜할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이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싶어 열심히 외웠습니다.
그렇게 하루 전날 통보를 받고 그 다음날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놀랍게도 다른 대만 모델들보다 제가 랩하는 속도가 더 빨랐습니다. 캐스팅 디렉터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외국인이 중국어를 더 빠르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더군요. 물론 빠르게 말하느라 성조는 다 날아가는 중국어로 랩을 했지만, 열심히 연습하고 오디션에 임한 결과 대만 CF의 첫 테이프를 끊을 수 있었답니다.

광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가서 옷도 입고 화장도 하고 머리 손질도 해서 여러 버전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광고주의 선택을 받은 안으로 촬영을 하기로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촬영 날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촬영 날, 촬영장에 도착하여 모든 준비를 마치고 환하게 불이 켜진 세트장에 들어가는 순간, 너무나 기뻐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제서야 실감이 나더군요.

촬영 계약은 16시간을 했었습니다. 보통 12시간 계약이 정상인데 제가 외국인임을 감안해 시간을 넉넉하게 잡은 것이였지요. 그런데 그 날 촬영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어 NG도 많이 안 나서 6시간 만에 광고 촬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스텝들도 감독님도 모두 만족하는 듯 했습니다. 현장 분위기가 매우 좋았던 광고 촬영으로 기억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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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광고 찍는 현장에서 ~다음에 광고도 보여드릴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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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광고 찍을 당시 ㅎㅎ 맥드라이브 아침광고라 부시시한 상태에서 얼마나 스피디하게 화장을 하고 아침을 사서 회사에 지각도 안하는지가 광고의 주 내용이다 ^^)

그렇게 첫 광고를 순조롭게 마친 뒤, 이어서 맥도날드 햄버거 치약 심지어 아파트 광고까지 한국에서는 생각도 안 해봤던 여러 분야의 광고들을 찍게 되었습니다.

맥도날드 광고를 찍을 때는 컨셉이 잘나가는 회사원이 스피디하면서도 실속 있게 아침을 주문해서 먹고 회사에 지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맥 드라이브에서 운전하며 주문을 해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운전이 서툴러 비틀비틀 애를 먹으며 광고를 찍었습니다.

치약 광고에서는 엄마역을 맡았습니다. 어린이 모델과 처음 호흡을 맞춰봤는데, 어린이와 작업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더군요. 양치를 한 뒤에 온 가족이 모여서 사과를 맛있게 한 입 배어먹고 웃어야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수차례의 NG가 나서 반복하다가 그만 혀를 깨물어 피를 보고 말았습니다. 맛있게 먹느라고 얼마나 힘껏 깨물었던지 혀 전체가 얼얼한 상태에서도 티 안내고 촬영을 하다가 스텝들이 발견하시고 모두가 걱정해주시는 덕택에 남은 촬영도 잘 끝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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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약 광고 현장 처음해본 엄마역할이었다 ㅎㅎ)



2) 내가 대만에 온 이유


많은 사람들이 왜 대만에서 일하고 있냐고, 거기는 돈을 많이 주냐며, 의문을 표합니다. 처음 보아가 데뷔하여 일본에 건너가 활동하기 시작한 시점이 제가 중국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였습니다.
그 나이에도 어린 보아가 낯선 환경에서 하나하나 부딪혀 가면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대견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나도 못할 것이 없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많은 시스템이 정착되고 안정된 나라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중화권에서 무언가를 이뤄보겠다고 다짐을 했었답니다.

연예계 데뷔를 위해 여러 현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내가 몇 년에 걸쳐서 만난 분들은 대부분 진심이 결여되어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사람에 의해 상처를 받고 또 사람에 의해 치유도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는 ‘DA C SIDE’라는 음악 동아리에서 본격적으로 노래를 배우며 그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실력이 뛰어난 선배들을 만난 덕에 스스로를 ‘숙성’ 시킬 수 있었습니다.

대학시절 여러 영화의 엑스트라에도 도전해 보았습니다. 기본부터 경험하고 알아가자는 목적이었죠. 그러나 직접 경험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비관적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힘들게 기다림과 싸우며 일한 대가인 보조출연비를 한 사람이 들고 사라져서 망연자실하기도 하였습니다.

기획사에 들어가서는 처음에 회사에서 약속한 여러 가지 사항들이 실제와는 달리 전혀 안 이뤄져서 자기발전에 시간을 투자하지도 못한 채 긴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당연히 집에서는 반대가 거세졌습니다. 힘든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지만 나같은 꿈을 갖고 있는 많은 이들이 다 겪는 아픔이라 생각하고 좀 더 견뎌보자 제 스스로에게 되뇌곤 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생각지도 못하게 진심으로 저를 걱정해주는 분이 대만 연예계라는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저는 바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갓 걸음마를 떼고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나가는 과정이지만 대만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은 저에게 아무런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새로운 곳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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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 온지 얼마 안되었을때... 이상하게 작년 겨울은 매우 추웠다....)



3) 대만 최고의 '예인'이 되고 싶다

중화권의 연예인들은 중국어로 ‘藝人’이라고 합니다. ‘예인’인거죠. 보통 배우와 가수의 경계가 분명한 한국과는 달리 홍콩이나 대만의 중화권 연예인들은 멀티 플레이어를 목표로 연예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 수준의 차이는 사람마다 여러 크지만 저 역시 연예인을 꿈꾸는 사람으로 ‘예인’으로 멋지게 성장하고자 합니다.

대만사람들을 겪어보니 중국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참 많더군요. 남쪽이라 그런지 좀 더 여유로운 분위기에 중국말도 나긋나긋한 것이 놀라웠습니다. 저 또한 적응하면서 대만의 여유로움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또한 길거리 음식 좋아하는 저에게 야시장의 수많은 새로운 음식은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충분하였습니다.

다만 비가 자주 오고 지진과 태풍이 잦아 처음에는 무섭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갑자기 약한 지진이 나서 흔들흔들 하는 와중에 이 글을 쓰고 있어요.

미래의 일은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얼마만큼 성장 할 수 있을지, 또한 한국으로 돌아가서 성장 할 수 있을지.... 다만 제가 알고 있는 사실 하나는 미래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대만에 온지 1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적지 않은 성과를 얻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처음에 목표했던 꿈을 향해 지진과 태풍을 뚫고 한번 달려보려고 합니다.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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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이상으로 만들고 그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것. 많은 분들도 다같이 자신의 꿈을 향해 한 발자국 더 진보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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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야친'으로 살아남기 1부

2008.09.08 18:57 | Posted by 쏭미친 yaqin
대만에서 ‘야친’으로 살아남기
제1부 ‘내가 대만 연예계에 데뷔한 이유’


아시아에서의 한류의 첫 시작 시점은 대략 6~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중국 텐진에서 중국학교를 다니며 거주했던 터라,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린 마음에도 한국 연예인들이 더 나은 질의 대중문화를 전파하며 한국의 문화 사절단 역할까지 해내는 것을 보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중국의 어린 아이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새로운 동경의 나라가 되어가는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연예인의 꿈을 안고 있었던 저는, 진로에 대해서 더욱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그 생각은 더욱 선명해 졌습니다. 많은 드라마와 음악이 중화권에 나가 사랑을 받지만 정작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진정한 한류 연예인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미래의제 인생에 대한 궤도를 정해놓았습니다.

그러나 연예계라는 판은 어찌나 여자의 마음처럼 갈대 같고 까탈스러운지 노력만 갖고는, 아니 혼자만 잘한다고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스치고 지나치고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고...

정말 그야말로 삽 하나만 들고 물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계속 이렇게 땅을 파서 물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도 포기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였는지 소중한 인연을 따라 대만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살면서도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해 사실 무지했는데, 중국말 할 줄 안다는 이유 하나로 겁 없이 들어간 것이죠. 와서 보니 말투도 글자도 다른 중국어라 현지 적응을 하는데도 시간이 좀 걸렸어요 . ‘쏭 야 친(송아진)’ 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대만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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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온천가서 찍은 사진 분위기 좋게 나와서 좋아하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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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회사 신인들이랑 잡지 창간기념 파티에 가서 찍은 사진. 가운데가 난데, 지금보니 눈이 짝짝으로 나왔다. ㅋㅋ)

적응을 좀 해놓고 숨을 돌리고 나니, 대만 연예계도 참 흥미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첸수이비엔 대통령이 8년 동안 나라를 쥐고 흔드는 바람에 그 오랜 시간 대만은 국제무대에서 거의 고립되어 살았습니다.
하지만 연예계는 반대로 외부 사람들에게 상당히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보니 대만의 연예계가 중화권 시장으로 나가는 첫 번 째 통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중국에서 살면서 알았던 많은 연예인들이 대부분 대만사람들이었고 싱가폴, 홍콩 등의 연예인도 대부분 대만에서 데뷔를 하거나 대만을 거쳐서 다른 곳으로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전체 인구 수가 서울 인구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대만에 이런 또 다른 매력이 숨어있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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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차이차이라는 장수 예능프로그램에 나갔을 때 사진. 오른쪽 두 번째가 나다.


제가 대만에 도착했을 당시에 이미 한류의 바람은 대만에서 거세게 불고 있었습니다. 대만에는 한국이랑은 달리 공중파보다는 케이블이 보편화 되어 있는데, 90개 가까이 되는 채널의 케이블이 거의 집집마다 달려있을 정도랍니다.
채널이 90개라고 방송사도 90개는 아니고 한국의 MBC가 MBC드라마넷 MBC ESPN, 이런 식으로 특성화 한 채널을 갖고 있듯이 대만에도 공중파 방송사격의 큰 방송국에서 3~4개 이상의 채널들을 갖고 있어서 뉴스, 예능, 드라마 등으로 나누어 채널을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여러 채널에서 한국 드라마를 끊임없이 틀고 있고(심지어 아침드라마도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답니다), 대만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덕택에 대만에서 한국인으로 연예계에 진출할 때 좋은 반응들을 얻을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작년 겨울에 무작정 옮겨온 대만이라는 무대에서 ‘쏭 야 친’이라는 또 다른 나를 만들어가는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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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만은 내거다. 미래의 우리집 앞에서 살짝 사진 한 방 박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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