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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활동하는 쏭미친의 대만 연예계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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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씨의 사건을 대하는 아진의 자세

2009.03.18 16:37 | Posted by 쏭미친 yaqin

한국에서 편안한 휴가를 보내고~또 칼날같은 겨울날씨와 씨름을 하며 허옇게 튼 산골소녀의 얼굴을 해갖고는 다시 대만으로 돌아왔답니다~ㅎㅎ
여러분은 안녕하신가요?

대만에서 제법 살았다고 돌아오니 마음이 편하네요.
돌아온 며칠은 날씨가 제법 춥더니 이제는 완연한 봄의 날씨로 접어들었답니다.
한국에도 봄이 왔을까요?
곳곳에 날아다니는 나비들과 초록빛으로 물든 거리를 보며 이제는 봄이 왔음을 실감하고 있답니다. ^^

참 한국에서 있을때 오래 알던 사진작가님의 도움으로 가장 최신 프로필 사진도 몇장 찍었답니다~ 보여드릴까요? 따끈따끈 사진~~ㅎㅎㅎ


( 이자리를 빌어 안실장님꼐 또한번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본인의 일처럼 기꺼이 도와주시고 이쁘게 잘 찍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아~~ )


수면위로 떠오른 또 다른 사건.



최근에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장자연씨의 사건이 있었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이 연예계일이다 보니 저도 이곳저곳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신인이라는 위치가 사실 너무나도 약하고 불투명한 위치다 보니 어떤 사람을 만나냐에따라 미래가 많이 좌우되기도 한답니다.  저도 한국에서 이사람 저사람 만나게되고 또 사람마다 또 상황에 따라 발견되는 사람의 새로운 면모에 놀라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했었답니다.  처음에는 사람 볼 줄 모르는 저의 안목을 탓하기도 하였고..... 또한 따라주지 않는 저의 운을 탓하기도 했답니다.

지금도 저는 사람을 잘 볼 줄 모른답니다.
사실 우리네 사회에서 비단 연예계 뿐만이 아니라 어떤 사회에 있어도 사람끼리 부딫히는 과정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날수 있는것이 사람 사회이지만 유독 연예계가 조명을 많이 받는 이유는 제가 생각건대 일반 회사나 사회보다는 소속감이 없고 구속감은 더하기 떄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답니다. (신인의 위치에서는 회사와 연예인이 상호보완의 관계가 아닌 일방적인 관계가 많기 때문이죠)
특히 신인이라는 위치에서의 이 사회는 너무나 냉정하고 고독한데 그러한 상황에서 정말 믿음직스러운 회사나 멘토등을 만나기가 참 힘든것 같아요.

그렇다고 마음을 닫고 아무도 안믿고 이 일을 하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환경이라 종국에는 상처를 받았어도 또 다시 사람을 믿고 조심스럽게 기대해보는 그런 과정이 반복된답니다.
저 역시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이 사회와 어른이 되는 과정을 학습하는 중이고요.
사람이 단단해진다는것이......참으로 힘듭니다.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날이 다시 찾아오듯이....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듯이......
아직도 배워야할것이 산더미인, 아직은 덜 여물어 단단하지 않은 저는
그렇게 스스로 똑같은 실수는 반복 하지 않도록 칭찬과 채찍질을 해가며
이 대만이라는 나라에서 앞을 보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정말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번 사건의 여파로 신인이라는 이름의 꿈을 쫓는 분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회나 일을 하는 환경에서 조금은 애틋하게 , 조심스럽게 신인을 이해하는 시각으로 발전하기를 온 마음으로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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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올리네요. 한국은 이제 제법 추워졌다고 하던데 대만은 시원한가 싶으면 다시 더워지는 날씨의 변덕 속에서 천천히 대만이라는 나라와 연예계에 적응하고 있답니다.
그동안 글을 못 올린만큼 오늘은 여러 이야기를 모아서 종합세트로 해드릴까 해요.





(금산에 있는 법북산사에서 한장~ 대만은 불교국가라 그런지 절이 참 많다 .)




1.  잡지창간 파티에 다녀오다.


바로 어제 한 잡지의 창간파티에 다녀왔습니다. 대만은 매체가 매우 많은 나라인데 그중에서도 잡지가 무척이나 많답니다.
 어제 새로 창간된 잡지는  <basara dan> 이라는 디자인 잡지였어요. 디자인도 종류가 많은데 이 잡지는 그래피티 위주의 디자인으로 티셔츠 디자인, 인형 디자인 등등이 주를 이루는 약간 언더의 개성을 갖고있는 남자 잡지였어요.


( 파티 진행자와 중간에 계신분이 창간자이시다. 처음에 저 귀여운 캐릭터에 넘어가 귀여운 잡지일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ㅎㅎㅎ)


 잡지 창간자분이 말씀하시길 인터넷에서 몇년간 클럽같은 동호회를 이어 오다가 이런 매니아적 잡지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창간하게 되었다고 하셨어요. 대만인들은 티셔츠를 많이 입는 편이라 티셔츠 디자인 샾이 곳곳에 꽤 많답니다.  여자인 저는 그래피티 티셔츠 잡지가 그리 와닿진 않았지만 이미 많은 매니아적 독자층을 확보해놓은듯 했어요.
이날 파티장에는 연예인들과 모델들도 꽤 참석을 하셨지만 아직 대만 연예계 초보인 저는 누가 누군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행사가 끝난 뒤 절 데려간 사장님이 같이 소개해 주셔서 인사를 나눴답니다.


(잘 찍고싶었지만 손떨림 방지가 안되는 꾸진 디카의 결말은 이렇습니다..ㅜㅜ 앞의 연예인분들은 누구신지 모르겠고 뒤에 빨간모자 옆에 여자분이 대만 모델계에서 탑에 드는 모델이시라고 하네요...^^;)



어느 잡지에나 표지모델이 있기 마련이죠. 이 잡지의 주 독자층이 남자분들인 관계로 첫 주인공의 스타트를 끊으신 표지모델분이 특별히 이날 참석하셨는데 누구냐고 속닥속닥 사장님께 여쭤보니 사장님도 속닥속닥 대답해주시길....
" 대만인인데 일본에 건너가서 활동하는 AV스타야......."
AV....AV....아..... 독자분들이 남자분들이라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뭔가 그래피티랑 에이브이랑은 잘 매치가 안되더라고요. 아마도 인터넷 동호회였을때 회원들의 심오한 토론과 투표에 걸쳐 결정된 표지모델인것 같았습니다.



사실 대만은 이런 성에 있어서는 개방적인것 같아요. 특히 이곳은 파파라찌도 많고 가쉽이 많은것이 특징인데 그러한 가쉽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들도 꽤 많거든요. 그렇다고 에이 가쉽인데 뭘 ....이러면서 잡지의 지위가 낮은것도 아니고 온국민의 사랑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판매율도 좋고 지위도 낮지가 않답니다. 그런 잡지들은 표지가 거의 노출로 이루어져있다고 볼 수 있는데 워낙 유명한 연예인들도 나서서 란제리만 입고 표지 사진을 찍는다는지 노출을 감행하니 그런 잡지 표지에 나오는 것을 아무나 못하는 래벨로 보더라고요. 다른 문화에서 온 저는 사실 그러한 점이 100% 이해는 되지 않지만 과거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을 당시 문화적인 교류및 정착이 이러한 대만의 문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국분들도 아시는 분이 있을까요? 그녀의 이름은 yinling이라고 합니다 요새는 일본에서 드라마도 찍고 계신가봐요. 위 사진에서의 빨간원피스가 표지모델분이시고 밑에 사진은 잡지에서 디자인한 티셔츠를 선보인다고 간단하게 쇼를 한 사진입니다.)




2. 대만의 야시장


대만은 길거리 먹거리가 참 많아요. 중화권 나라들이 대체로 그러한데 집에서 밥을 잘 안해먹기 때문에 이러한 먹거리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특히 대만은 야시장이 많은데 저녁에 야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먹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이미 대만의 특성이 되어버린 야시장은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데 오늘은 이러한 야시장에 다녀온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얼마전에 이러한 야시장중에 타이베이시에서 좀 멀리 자리잡은 유명하고 큰 야시장인 지롱 야시장에 친한 지인들과 방문하였답니다.

크디큰 시장에는 이미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였습니다. 이건 뭐 남대문시장보다 사람이 더 많아서 지나가는데도 힘들정도였지요. 그래도 우리는 꿋꿋하게 맛나는 집을 찾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먹었답니다.

지롱 야시장에는 유명한 땅콩 아이스크림도 있고 해산물도 신선하고 맛있었어요. 지롱이 해변과 가까워선지 해산물 가격도 비싸지 않고 때깔도 고운것이 군침이 절로 흘러나올 정도랍니다.

그렇게 발길 닿는데로 들어간 해산물 식당에서 (식당이라고 해봐야 밖에서 해산물 고르고 안에 테이블 몇개 있는게 다인) 고른 요리마다 어찌나 맛있던지 원래 저녁생각이 없어서 조금만 먹는다고 했다가 어느새 사람들과 치열한 전투를 하며 요리를 먹고있었답니다.


4명이서 배불리 맛있게 먹고 난 뒤 가격은 한국돈으로 46000원정도,  만족도 100
%의 한끼였답니다. (써놓고 보니 무슨 광고글 같네요 ;;) 그리고 대만요리들은 튀긴 요리가 아주 많은데 느끼하긴 하지만 튀기는 기술이 남다른지  바삭바삭하고 맛있더라고요. 청소년들이 아주 좋아하는 길거리 음식중 하나가 튀김인데 한국에서는 그런것도 튀겨?라고 반문할정도로 여러가지 재료들을 튀김으로 판답니다.

강낭콩, 버섯, 돼지피, 오뎅, 무케잌, 닭고기, 감자, 고구마, 두부 등등등....
요새 하나하나 실험삼아 먹어보고 있는데 역시 튀김은 닭고기 튀김이 최고죠..
사실 통닭이 먹고싶을 때마다  닭고기 튀김을 먹는답니다.


(맨 위 사진은 야시장에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죠.사실 이날 화장도 않하고 꾀죄죄해서 사진을 올릴까 말까 고민했지만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하고픈 마음에 그냥 올리게 되었어요 이쁜이 얼굴이 아니지만 아무쪼록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하며....;; 이날 주인공은 뭐라해도 맨 밑 사진의 해산물이죠. 사진만 봐도 싱싱함이 느껴지시죠? )


이상 야친의 최근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글이었습니다. 한달 전 야친은 대만에서 한 장면뿐이지만 드라마를 촬영했답니다. '공주소매'의 감독님의 정원창군,코알라 린이천양이 또한번 주인공으로 뭉친 드라마에요. 11월 16일에 첫 방영을 하는데 제가 찍은 장면도 1회라 그날 방영을 한답니다. 저는 왜 처음 찍는 드라마들은 나라를 막론하고 죄다 망가지고 웃긴 역할인지 모르겠지만 무섭기로 소문난 감독님과 촬영에서 NG도 안내고 일사천리로 잘 촬영을 마쳤답니다.
드라마 촬영기는 다음번에 올려드리도록 할께요~^^
그럼 아무쪼록 감기 조심하시고 모두들 꿈을 향해 더욱 힘차게 달려가시는 하루가 되시길 기원할께요.

감사합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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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야친'으로 살아남기 1부

2008.09.08 18:57 | Posted by 쏭미친 yaqin
대만에서 ‘야친’으로 살아남기
제1부 ‘내가 대만 연예계에 데뷔한 이유’


아시아에서의 한류의 첫 시작 시점은 대략 6~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중국 텐진에서 중국학교를 다니며 거주했던 터라,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린 마음에도 한국 연예인들이 더 나은 질의 대중문화를 전파하며 한국의 문화 사절단 역할까지 해내는 것을 보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중국의 어린 아이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새로운 동경의 나라가 되어가는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연예인의 꿈을 안고 있었던 저는, 진로에 대해서 더욱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그 생각은 더욱 선명해 졌습니다. 많은 드라마와 음악이 중화권에 나가 사랑을 받지만 정작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진정한 한류 연예인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미래의제 인생에 대한 궤도를 정해놓았습니다.

그러나 연예계라는 판은 어찌나 여자의 마음처럼 갈대 같고 까탈스러운지 노력만 갖고는, 아니 혼자만 잘한다고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스치고 지나치고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고...

정말 그야말로 삽 하나만 들고 물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계속 이렇게 땅을 파서 물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도 포기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였는지 소중한 인연을 따라 대만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살면서도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해 사실 무지했는데, 중국말 할 줄 안다는 이유 하나로 겁 없이 들어간 것이죠. 와서 보니 말투도 글자도 다른 중국어라 현지 적응을 하는데도 시간이 좀 걸렸어요 . ‘쏭 야 친(송아진)’ 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대만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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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온천가서 찍은 사진 분위기 좋게 나와서 좋아하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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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회사 신인들이랑 잡지 창간기념 파티에 가서 찍은 사진. 가운데가 난데, 지금보니 눈이 짝짝으로 나왔다. ㅋㅋ)

적응을 좀 해놓고 숨을 돌리고 나니, 대만 연예계도 참 흥미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첸수이비엔 대통령이 8년 동안 나라를 쥐고 흔드는 바람에 그 오랜 시간 대만은 국제무대에서 거의 고립되어 살았습니다.
하지만 연예계는 반대로 외부 사람들에게 상당히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보니 대만의 연예계가 중화권 시장으로 나가는 첫 번 째 통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중국에서 살면서 알았던 많은 연예인들이 대부분 대만사람들이었고 싱가폴, 홍콩 등의 연예인도 대부분 대만에서 데뷔를 하거나 대만을 거쳐서 다른 곳으로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전체 인구 수가 서울 인구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대만에 이런 또 다른 매력이 숨어있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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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차이차이라는 장수 예능프로그램에 나갔을 때 사진. 오른쪽 두 번째가 나다.


제가 대만에 도착했을 당시에 이미 한류의 바람은 대만에서 거세게 불고 있었습니다. 대만에는 한국이랑은 달리 공중파보다는 케이블이 보편화 되어 있는데, 90개 가까이 되는 채널의 케이블이 거의 집집마다 달려있을 정도랍니다.
채널이 90개라고 방송사도 90개는 아니고 한국의 MBC가 MBC드라마넷 MBC ESPN, 이런 식으로 특성화 한 채널을 갖고 있듯이 대만에도 공중파 방송사격의 큰 방송국에서 3~4개 이상의 채널들을 갖고 있어서 뉴스, 예능, 드라마 등으로 나누어 채널을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여러 채널에서 한국 드라마를 끊임없이 틀고 있고(심지어 아침드라마도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답니다), 대만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덕택에 대만에서 한국인으로 연예계에 진출할 때 좋은 반응들을 얻을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작년 겨울에 무작정 옮겨온 대만이라는 무대에서 ‘쏭 야 친’이라는 또 다른 나를 만들어가는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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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만은 내거다. 미래의 우리집 앞에서 살짝 사진 한 방 박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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